:::::::::::::::: P A R K S U N G Y E O N ::::::::::::
profile
artworks
artist's statement
installation view
review
note
 



login      

Sungyeon      {02-15 /Monday 18:39:38}   

  § 글: 찾아온. 단단한. 사라진 §


* 이 글은 나의 작업 세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동료 작가이자 이웃인 태이에게 부탁한 글이다.
이 도록안에서 평론과 작업의 평행이 아닌 대화로서 자리하기로 한다.

찾아온. 단단한. 사라진.
still lives; small lives


시월 22일. 그가 우리집에 찾아온 것은 시월이다.

두 개의 짐가방을 똘똘똘 끌고 온 그는 겨울을 견디고 봄날에 찾아온 손님처럼 얇은 옷을 입고 있다. 벽돌들 사이로 찬 공기가 송송 들어오는 집은 서늘하다. 그는 집이 왜이리 시려우냐는 표정을 지으며 웃옷을 벗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안쓰러웠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가벼운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근처를 두리번거리며 깊게 한숨을 한번 쉬고는 짐을 내려놓는다. 그는 어디에서 부터 걷기 시작했을까? 그는 보따리를 제치고 마루바닥에 앉아 퉁퉁 부은 종아리를 때리고 있다.

아침이 되면 우리들은 정신이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화장실 앞에 슬프고 졸리운 눈으로 줄을 서서 몸을 씻고는 대충 빵쪼가리를 입 안에 미어 넣고 바삐 자전거에 몸을 싣고 세상 바깥으로 바퀴를 굴려 나간다. 거리에는 아침 일찍 세차를 나온 흑인 아저씨, 밤새 파티를 하고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오렌지색 머리의 아가씨, 허리가 긴 버스들처럼 쪼르륵 맞물려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 아이들 손을 붙잡고 서류 가방을 매고 뛰고 있는 직장인 부모들, 아침풍경은 늘 똑같다.

런던의 아침은 흐리기 일쑤였지만, 또 11시쯤이 되면 말짱 하늘이 개고 바람이 시원하다. 그러다가는 또 별안간 비가 온다. 나는 비가 올 때면 카페에 앉아서 비가 오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젖은 벽돌 사이를 지나가는 개미떼를 손으로 뭉개기도 했다. 나는 그가 집에서 무엇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가 적응하는 동안 간섭하지 않으려 애쓰며 하루를 보냈다.

식구들은 모두 그의 방문에 상관치 않고 일상을 지낸다. 그렇다고 그에게 불친절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을 따뜻이 만져주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말을 걸어봐야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선지, 그닥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주 발달된 귀를 가지고 있어서 삼층에 있으면서 지하실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알고 있다. 그는 그런 온정이 없더라도, 명랑하고 쾌활하다.

나는 그가 하루종일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간혹 저녁이 되어 테레비전 앞 소파에 함께 앉아 차를 마시기도 했지만, 나는 늘 바쁘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온 날 이후로 차를 내오거나 굳이 안부를 묻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그는 점점 더 나의 일과 가까이에 있다. 그는 내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 밥을 해놓기도 한다. 나는 뭐 이런걸, 하면서 내심 든든한 배로 출근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나는 그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의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그는 하루종일 집에서 할 일이 많다. 그는 식구들이 쌓아놓고 나가는 접시들을 닦아놓기도 했고, 집에 오면 뽀얗게 먼지가 싸여 늘 채도가 조금 낮아보였던 테레비전이 선명해져 있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갖가지 살림의 지혜들을 알고 있어서, 쓸모없는 페트병에 말라가는 바질을 심어놓기도 했고, 짜고 남은 레몬으로 도마를 비비기도 하고, 구멍난 고무장갑을 가로로 가늘게 잘라서 갖가지 다른 사이즈의 고무줄을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 그는 오후가 되면 약한 불에 물을 천천히 끓이면서 탁자에 앉아 담벼락을 바라본다. 옆집의 아이비 덩쿨이 우리집까지 넘어왔다. 하늘이 파래지고 하야지고 회색으로 변하는 시시각각 외계의 부름이라도 받은 것 같은 고양이가 담벼락을 훌쩍 넘어간다. 그는 뜨거운 물을 노란색 찻잔에 부어서 탁자에 놓는다. 찻잔을 들었다가. 다시 놓는다. 입술을 뜨거운 물에 대어보았다가. 조금씩 조그만 목구멍으로 흘려 보냈다가. 숨을 쉰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집에는 A4 용지가 하루에 한장씩 바깥 문의 틈새에서 흘러 들어온다. 처음에는 잘못 인쇄된 광고 전단지인가 했다. 구두로 밟고 지나가려는데 그가 쪼르르 와서 종이를 가져간다. 아침마다 A4용지는 배달되었다. 그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늘 식구들의 구두굽에 밟히기 전에 종이를 수집해간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집의 일부가 되어간다. 그는 이제 방문객이 아니라 거주인이다. 그는 집의 곳곳의 먼지들까지 다 알고 있다. 그는 집안에 숨겨진 책들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비밀 편지들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의 흔적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가 만지고 지나간 계단의 나무는 더 매끄러워져 있다. 나는 그가 계단을 내려가면 내 방에서 나와 똑같은 계단을 내려가며 그가 만진 자리를 나도 만져본다.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가 아침일찍 일어나 음식을 만들고 있을 때면 나는 부엌 문을 열고 들어가 잠이 덜 깬 얼굴을 그의 등에 가만히 대어 본다. 그의 심장뛰는 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기관차 소리 같다. 튼튼하고 가느다란 심장에서 나오는 동맥의 실로 엮어져 있는 바퀴들은 끝도 없이 어디론가 간다. 어쩌면 어느날 아침 그는 그 기관차를 타고 멀리 가고 싶다.

우리들 중에 몇은 머리가 커지고 물건이 많아져서 분가해 나갔다. 그들의 삶은 분리되더라도 같은 세포 내 소화를 할 수 있는 원생동물처럼 아침이면 분주했고, 밤이 되면 바람이 들었다. 붙잡을 수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는 이별들이다. 그러다가 또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나간 방에 새로운 사람들을 들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빈 방에 하얀 A4 용지를 빈틈없이 붙이기 시작한다. 빈방은 그림자도 없이 하얗게 변해간다. 나는 문틈 사이로 방문을 들여다 보기도 했지만 그의 일이기에 그닥 참견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들은 무엇이든 지혜롭고 중대한 일들이라고 느껴진다.

그와 나와의 조용한 삶은 그의 기관차들처럼 시간의 굴레가 잘 엮어져서 칙칙폭폭 잘도 간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하늘은 무슨 색깔이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길에는 어떤 모양의 쓰레기가 나뒹굴고 빗물에는 짠 맛이 났는지 떫은 맛이 났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그는 늘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알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는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내가 신기해하는 집밖에 일들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그때마다 나는 나와 함께 가자, 어디든지 가자 라고 하고 싶다.

집은 점점 작아져간다. 하얗게 변한 빈방들은 여름이 오자 녹아내린다. 처음에는 삼층에 방이 여섯 개였는데, 이제는 그의 방, 나의 방, 부엌만 남기고는 다 녹아버렸다. 공간은 녹아버렸지만 벽에 붙어있던 A4 종이들은 벽에서 떨어져 차곡차곡 쌓여 한쪽의 허물어진 벽은 벽돌대신 두툼한 종이 뭉치들이 올려나간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는 쌓여진 종이들을 묶어 튼튼한 벽을 또 만들어 나간다. 그는 종이보다 더 단단하고 무거운 것은 없다는 듯이 녹아내린 벽돌들을 대신하는 종이뭉치들을 자기 새끼처럼 툭툭 두들겨본다.

긴 여름이 지나고 다시 시월이 왔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종이 뭉치의 벽들 사이로 빛이 스며 들어온다. 따뜻하고 느린 아침이다. 부엌으로 내려가 다시 그의 등에 졸리운 얼굴을 대고 멀리서 오는 기관차 소리를 듣자.

그는 어디가고 없었다. 대신 냉장고 안에는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갖가지 반찬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그의 부재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탁자 위에 벽에서 흘러내린 종이가 떨어진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방도 다 녹아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집에 처음 들고온 짐가방도 없어졌다.

아주 작은 글씨로 씌여있는 그의 편지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하는 내딸'

나는 그가 없는 부엌의 빈자리를 향해서 손가락을 어루만져 본다. 먼지들 사이로 해무늬가 만져진다. 나는 그가 마시던 노란색 찻잔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신다. 찻잔의 고리가 끊어져 있다. 나는 온 손바닥으로 찻잔을 감싸고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  


태이 (작가)
list  

No
Subject
Name
Date
33      2011_Sublimation-Connotative    Sungyeon 11/04/25
32      2011_전시기획Curating '오후 네시 속으로' into 4pm    Sungyeon 11/04/25
31      2010_전시기획Curating 'Frozen in Time'    Sungyeon 11/04/24
30      2010_Open Studio in ISCP    Sungyeon 10/12/03
28      2010_Humming for Days    Sungyeon 10/10/28
23      2010_UP-AND-COMERS 신진기예    Sungyeon 10/04/16
15      Essay_Visits. Consolidates. Disappears by Taey Iohe    Sungyeon 10/02/15
13      글: 찾아온. 단단한. 사라진    Sungyeon 10/02/15
12      2009_still lives; small voices    Sungyeon 09/11/28
11      2008_Stimulatives    Sungyeon 08/12/18
10      2008_여성60년사 그 삶의 발자취 Herstory 60    Sungyeon 08/12/18
9      2008_아티스트s’ 가든 - 아이들의 정원 전시    Sungyeon 08/12/18
8      2008_4482: Exhibition of emerging Korean artists in London    Sungyeon 08/10/23
7      2008_TENDERPIXEL PRESENTS: SUNGYEON PARK & TREVOR KIERNANDER    Sungyeon 08/08/28
6      글: 웅얼거리는 미친 언어들    Sungyeon 07/10/01
4      2007_Chelsea MA shows 2007    Sungyeon 07/09/18
3      2007_벽_그 너머의 이야기 Wall - a story behind that    Sungyeon 06/06/21
List   [1][2] 3  
Copyright 2019 Park Sungyeon